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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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촬영한 요정 대원각의 사진이다. 대원각은 선잠로 5길 68(성북동 321-3)에 존재했었으며 지금 이 자리에는 길상사가 있다.
삼선교 분수광장 아래 위치한 성북천 마지막 복원구간에 직접 들어가 촬영하였다. 촬영 당시 낮이었음에도 내부가 상당히 어두웠으며 과거 복개하천이었던 당시 성북천의 모습이 상상되는듯 하다.
성북천 마지막 복원구간으로 삼선교 분수광장 아래 위치하고있다. 해당구역부터 성북로를 따라 삼청각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매립되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성북로 걷고 싶은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동판이다. 성북동 문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동판 뒤편에는 문인들의 거주지, 집터의 위치와 성북동에서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성북구립미술관 거리갤러리 전경으로 정면에 보이는 다리가 복자교이다.
복자교 아래에서 바라본 성북구립미술관 거리갤러리 전경이다. 정면에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거리갤러리'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앞 복자교 아래 약 100m 구간에 있던 가옥과 상가를 철거하고 조성되었다. 거리갤러리는 쌍다리지구 특화거리 조성의 일환으로 쌍다리지구 옹벽을 활용하여 성북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성북로 24길 3에 위치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현재는 피정(종교적 수련)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 사진과 비교해 살펴보면 하천이 복개되고 주변환경이 많이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북로 24길 3에 위치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현재는 피정(종교적 수련)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원 건물 아래가 과거 성북천이며 복개 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쌍다리 식당 앞 도로 전경을 촬영한 사진이다. 복개 전에는 성북천이 흐르고 위로 쌍다리가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지명으로만 남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전경을 보고 있으면 예전의 모습이 어렴풋이 상상되는듯 하다.
성북천 복개로 철거된 쌍다리의 흔적을 가게 간판 속 상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북천 복개로 철거된 쌍다리의 흔적을 식당 간판 속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쌍다리는 지금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성북구립미술관, 수연산방이 마주보고 있는 지점에 위치하던 두 개의 다리이다. 아래쪽은 돌다리, 위쪽은 나무다리로 구성되었으나 1980년대 성북천 복개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철거되었고 현재는 '쌍다리'라는 지명만이 버스…
는 김광섭의 시집으로 1969년 11월 15일 발행되었다. 이 사진은 범우사(汎友社)에서 출판한 초판본이다.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에서 살던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성북동 개발 양상을 통해 자연파괴와 인간애 상실을 성북동 비둘기에 투영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가…
에 나온 산 1번지 채석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위치, 바로 송산 아파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현재는 아파트 주춧돌로 사용되고 있는 바위가 바로 과거 채석장의 흔적인 것이다. 에서 언급되는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이란 채석장에서 폭약을 사용하는 소리였다. 김광섭…
에 나온 '산 1번지 채석장' 위치를 알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에 보이는 성북동 사진 중에 우측에 보이는 돈암동 아파트단지가 옛 산 1번지 채석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채석장의 흔적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한편, 해당 사진은 한성대학교…
김광섭 시인의 일제강점기 떄의 모습을 잘 알려주는 카드이다. 그는 1933년 일제강점기 당시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지만, 1941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이내 모진 고문을 받고 2년동안 징역을…
김광섭 시인의 일제강점기 떄의 모습을 잘 알려주는 사진이다. 그는 1933년 일제강점기 당시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지만, 1941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이내 모진 고문을 받고 2년동안 징역을…
김광섭 집터로 향하는 길의 모습이다. 오르막이 상당하지만, 김광섭 시인 본인은 항상 이길을 올라가고 내려왔을 것이다.
북정마을에서 본 성북동의 전경이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북정마을, 하지만 이전에는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보존해가는 모습 또한 중요한것 같다.
비둘기 쉼터에서 수 많은 성북동 비둘기들의 환대를 받은 뒤에 마지막에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모두 꽃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비둘기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만 같다. 북정마을에서의 비둘기, 그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마전터란 조선시대 옷감을 삶거나 빨고 표백하는 곳을 말하며 현재의 성북구 선잠단 앞 성북천 일대를 가리킨다. 1970년 성북천 복개공사로 빨래터가 사라진 후, 현재는 성북로 95-1 앞 인도에 설치된 마전터 표지석이 과거 복개 전 성북천의 흔적을 보여준다.
비둘기 쉼터에 영원히 날개를 펼치는 흰색 비둘기의 모습이다.
수 많은 비둘기 무리들이 무리를 지어 비둘기 쉼터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의 비둘기들은 자신의 터전을 빼앗겨 마음 아픈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치유하고자 영원히 날 수 있는 비둘기 떼를 비둘기 쉼터에서만이라도 남겨 놓은 것이다.
비둘기 쉼터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북정마을 주민분들이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운동기구와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성북동에서 그 경치를 보면 아래로는 성북동의 전경이 위로는 성곽길이 보이기 때문에 성북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쉼터라 할 수…
비둘기 쉼터에 있는 비둘기 책방의 내부 사진이다. 주민분들의 지친 마음 속에 작은 쉼터가 될 수 있는 비둘기 책방은 비록 소량의 도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출명부가 존재하고 누군가 정기적으로 청소까지 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관리가 잘 되는…
비둘기 쉼터 속 비둘기 책방의 외부사진이다. 비둘기 쉼터는 북정마을 주민분들이 육체적 피로에 대한 쉼터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쉼터의 역할도 해주고 있다.
비둘기 쉼터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북정마을 주민분들이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운동기구와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성북동에서 그 경치를 보면 아래로는 성북동의 전경이 위로는 성곽길이 보이기 때문에 성북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쉼터라 할 수…
비둘기 쉼터의 다른 이름인 비둘기 공원의 안내문이다.
북정 마을에 있는 비둘기 쉼터에는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는 김광섭 시인의 제4 시집 에 수록된 작품으로 김광섭 시인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비둘기 쉼터는 2009년 국민대학교와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해 북정 성곽마을 월월축제의 일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