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怡山) 김광섭 시인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시인이 살았던 성북동에서 그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성북동 비둘기>의 의의를 '삼선 5구역 재개발 단지'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명인 이산(怡山) 김광섭은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이곳 성북동 168-34번지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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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보이는 김광섭 집터의 안내문은
이곳 어딘가에 김광섭 시인의 집터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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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현재 김광섭의 집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흔적과 발자취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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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의 집터로 향하는 길,
그곳은 분명 평탄하지 않은 오르막길이다.
김광섭 시인이 거주했던 기간동안
아마 수차례 이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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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가파르고,
긴 언덕길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힘들 수 있는 길이다.
김광섭 시인이 이곳에 거주했던 1960년대
자신의 집을 가기 위해서 항상 올라가야만 했던 언덕길.
안락하고도 편안한 집을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길고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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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의 하루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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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김광섭 시인의 집은 존재하지 않고,
성북동 168-34번지에는 원익스카이빌이라는 5층짜리 건물이 있다.
아쉽게도 그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김광섭 시인이 50여년전 머물렀던 공간에서
잠시 그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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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광섭 시인의 집터에서 바라 본 성북동은 정말 아름답다.
파아란 하늘, 흰색 구름, 나무가 우거진 북악산은 절경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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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광섭 시인이 살았던 50여년 전의 성북동도 그러했을까?
당시 성북동은 개발의 광풍을 그대로 맞이하면서 채석장과, 철거민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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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당시의 개발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을지라도,
자연과 인간성이 상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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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시인은 성북동에서 살면서 이러한 아픔을 보았고,
자신의 착잡한 감정을 온전히 시에 써내려갔다.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애가 없어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