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명 : 2021이선민
컬렉션에 등록된 아이템수 : 170
식별번호 : 2021-powersm98
생산자 : 2021이선민
기술내용 : 2021이선민 성북천 아카이빙
컬렉션 위치 :
컬렉션에 등록된 아이템수 : 170
식별번호 : 2021-powersm98
생산자 : 2021이선민
기술내용 : 2021이선민 성북천 아카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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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북천 (2021)
돌다리를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이용자는 사람만이 아니다. 성북천의 돌다리는 물에 젖기 싫어하는 고양이도 애용하고 있다.
오리가 성북천 바로 앞에서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 들어갈까, 아니면 밖에 좀 더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
흰색오리가 다른 오리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려주고 있다. 하지만, 친구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해가 중천에 떳음에도 불구하고...
무궁화꽃이 자랄 수 있게 성북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무궁화는 7월에서 10월에 핀다. 무궁화가 만개할 때,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
성북천에서 바라본 한성대 셔틀버스이다. 많은 학생들, 교직원분들을 태우고, 우리를 위해 애써주시는 기사님들 감사합니다!
성북천의 수질이 얼마나 깨끗한 것인지 알수 있게 해주는 사진이다. 보는 것처럼, 너무나도 맑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북천은 거의 모든 구간이 안쪽으로부터 물, 갈대 밭, 돌 , 산책로 순으로 나타나 있다. 과연 과거에도 이러했을까?
성북천에 거주중인 담수어류(잉어?)는 보통 수질이 2급 정도가 되는 환경에서 서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성북천의 수질이 항상 2급을 유지했을까?
성북천의 색깔은 많다. 이번에는 이끼 등의 영향으로 녹색으로 변했다. 성북천은 그 자연과 어울려 여러가지 색을 보여주고 있다.
성북천에서 바로 본 북악산의 풍경이다. 황사, 미세먼지, 고가건물에 의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성북천의 환경은 과거에 비해서 좋아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아진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성북천의 더럽혀진 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빗자루이다. 늘 더러워 질 수도 있는 성북천은 이 빗자루에 의하여 정리되고 있다.
성북천은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습이 조금 씩 바뀌는 것 같다. 건물에서 본 성북천의 전체적인 모습은 정돈이 매우 잘되어 있다.
성북천의 예초가 끝난 희망의 다리 방향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깔끔해졌고, 하천도 더 잘 보인다. 성북천은 수 없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벚꽃의 암술 부분을 쪼아 먹고 있는 참새의 모습이다. 예외적으로 한마리가 아닌, 많은 참새들이 벚꽃을 먹고 있다. 지면서까지 많은 동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벚꽃이 아닐까?
벚꽃 나무는 벚꽃이 없으면 어떤 나무로 불렀을까? 아마 '보통 나무'라고 했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에게 벚꽃나무는 한시적으로만 감동을 준 다는 것이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지난 주에 대대적인 예초로 인해 잘려나간 풀들이 다시 자랐다. 자라는 속도가 정말 빠를 정도이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위대한 존재인 것 같다.
모든 풀들이 만개하며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 시점에, 유독 성장이 느린 친구가 있다. 무엇이 나올 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더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려고 느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무엇을 심어놓았다. 그것도 나무 주변을 돌로 막아 놓았다. 아마도 누군가 4월 5일 식목일을 기념하며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수 많은 벚꽃이 비, 바람 등에 의하여 떨어지고, 그 잔해들이 성북천에 고스란히 내려 앉았다. 이것 또한 4월에만 일시적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관경이 아닐?
어떤 꽃인지는 정확이는 모르겠지만, 성북천의 색깔은 더욱 더 추가되고 있다. 이제는 보락색까지 추가되며 성북천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지칭게는 봄에 열리는 전형적인 꽃이다, 하지만, 수 많은 꽃과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는 성북천에서는 눈에 띄기 쉽지 않다. 허리를 숙여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보물이 있는 법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인 고들뺴기가 성북천에 점점 만개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씀바귀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 특징으로 보았을 때 확실한 고들뺴기다. 한편, 고들빼기는 종종 나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삼선교에서 도란도란교까지의 자연을 보여주고 있는 영상이다. 수 많은 식물, 하천이 흐르는 소리, 새 소리, 여러 동물들이 중간중간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란도란교에서 희망의다리까지의 자연을 보여주고 있다. 한눈에 보다 해당 구간이 삼선교에서 도란도란교에 해당하는 구간보다 식물이 더 울창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날개를 활짝 피며 하늘을 날던 왜가리가 하강을 시도하고 있다. 안전한 착지 후에 성북천의 물고기를 사냥하기 위함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면서 성북천 물의 양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물살도 빨라지고, 주변의 풀도 하나씩 쓰러져 간다.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성북천의 물살이 강해졌다. 개수가 잘되었기 때문에 큰 비에도 문제가 없지만, 과거에는 큰비가 내리면 많은 피해가 생겼을 것이다.
성북천 오리가 비가 온 뒤에 거세진 물살을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중인 모습을 보인다. 사람의 걷는 속도와 같을 정도로 정말 빠르게 움직인다
성북천의 오리들의 이동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식물들이 많이 자라난 탓에 계속해서 영상을 찍기는 힘들지만, 오리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영상이다.
희망의 다리 중간에서 자연을 찍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사진 기록을 생성하는 것을 마무리하게 되면서, 나름 시원 섭섭하기도 하고 보람찼다고 생각한다.
유독 꽃을 정말 많이 보았던 한해였다. 성북천 사진 기록을 생성해서 그런지, 그동안 쉽게 지나쳤던 것을 자세히 보면서 많은 감정을 느낀다.
항상 봐왔던 오리를 찍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데, 새로운 오리들도 추가된 것 같다. 앞으로 많은 것이 더 바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을 하는 것은 큰 추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북천은 수위가 낮은 탓에 물 밖에서도 하천의 바닥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자세히 보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자갈들, 모래, 바위가 합쳐져 성북천의 바닥을 더욱 더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것이다.
성북천 아래에는 색이 매우 다채로운 자갈들이 존재한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붉은색, 하얀색, 갈색, 검은색 등 매우 다채롭다. 이런 것을 보고 보물이라고 일컫는 것이 아닐까?
성북천 바닥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다. 바위의 가장 윗부분은 물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래에는 밟으면 쉽게 넘어져 다치게 만드는 이끼들이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한다.
왜가리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도약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날개의 모습이 그 어떤 말로 비유를 못할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
1990년 05월 보문시장 앞 성북천의 모습이다. 해당 자료를 통해 삼선교 주변의 성북천이 과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약 30년 전의 성북천의 모습은 지금과는 매우 다르다. 그렇다면, 성북천은 어떻게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과거에 성북천은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복개된 형태로 상가아파트가 위치하였다. 따라서, 지금의 삼선교주변 성북천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자연을 보이는 이유는 2000년대 성북천 복원 사업이 시작되며 상가아파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삼선교 위치에는…
해당 사진은 1976년에 진행된 성북천 도로공원 준공식이다. 장소는 성북구청 뒤의 성북천이지만, 현재 삼선교 부근의 성북천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을 만한 사진이다. 현재는 굉장히 많은 동,식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냥 하천만 흘러갈 뿐이었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 168-34번지에 거주하였음을 알리는 표지문이다.
당시, 그는 성북동에 거주하면서 , , 등을 구상하였다.
아쉽게도 현재 김광섭 시인이 거주하였던 집은 남아있지 않고, 그가 살았던 집터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김광섭 시인이 살았던 집터로 올라가기 위한 언덕이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 김광섭 시인은 자신의 집을 가기 위해서 항상 올라가야만 했던 언덕이다.
안락하고도 편안한 집을 가기위해서 넘어야하는 길고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김광섭 시인의 하루를 대변하는 것이…
김광섭 집터로 가기 위해 올라간 언덕에서 내려다 본 성북로 10길이다.
김광섭 시인은 항상 이 언덕을 내려오며 내리막길을 건넜을 것이다. 맑고 화창한 날씨를 바라본 김광섭 시인은 언덕길과 내리막을 왔다갔다하며 어떤 시들을 구상했던 것일까?
김광섭 집터로 가기 위해 존재하는 언덕길 중에 경사가 가장 가파른 얻덕 구간이다.
김광섭 시인은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 이 가파른 언덕을 수 많이 올라갔을 것이다.
삶의 무게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언덕을 항상 올라갔기 떄문에 아름다운 시가 완성될 수 있었던…
김광섭 집터에서 내려다 본 성북동의 전경과 혜화로를 담은 사진이다.
김광섭 시인이 실제 거주했던 1960년대에는 고층건물도 없을 뿐더러, 더 적은 집이 존재 했을 것이다.
집에서 바라 본 성북동은 복개되기 이전의 성북천과, 보수되기 이전의 성곽길, 서울을 둘러…
김광섭 집터는 현재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가 살았던 성북동 168-34번지에는 원익스카이빌이라는 5층 빌딩만이 있을 뿐이다.
김광섭 시인 집터의 번지수와 우편번호이다.
그가 살았던 50년 전과 비교하면 아마 모든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비록, 변화의 변화를 거듭하였던 성북동이지만 김광섭 시인의 작품 속에 있는 메세지들은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 김광섭 집터에서 볼 수 있는 남산과 남산타워의 모습이다.
비교적 날씨가 더 맑았던 과거에는 남산의 광경을 더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김광섭 시인이 자신의 집에서 바라 본 서울의 광경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개발의 광풍은…
김광섭 집터에서 바로 보이는 성북동의 전경이다.
푸른 하늘과 북악산의 경치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김광섭 시인이 살았던 50여년 전에는 지금보다는 더 적은 건물들이 있어 그 경치가 더 뛰어났다.
그러나, 개발의 광풍을 그대로 맞이하면서 채석장이 생기고,…
북정마을에서 바라 본 성북동의 모습이다.
북정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나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판조촌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현재에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며, 2015년에는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한편, 북정마을에는…
북정 마을에 있는 비둘기 쉼터에는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는 김광섭 시인의 제4 시집 에 수록된 작품으로 김광섭 시인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비둘기 쉼터는 2009년 국민대학교와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해 북정 성곽마을 월월축제의 일환으로…
북정 마을에 있는 비둘기 쉼터에는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는 김광섭 시인의 제4 시집 에 수록된 작품으로 김광섭 시인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비둘기 쉼터는 2009년 국민대학교와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해 북정 성곽마을 월월축제의 일환으로…
북정 마을에 있는 비둘기 쉼터에는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는 김광섭 시인의 제4 시집 에 수록된 작품으로 김광섭 시인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비둘기 쉼터는 2009년 국민대학교와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해 북정 성곽마을 월월축제의 일환으로…
비둘기 쉼터 속에 있는 비둘기 쉼터 표지문의 사진이다.
비둘기 쉼터는 2009년 국민대학교와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통해 북정 성곽마을 월월축제의 일환으로 이루어져 창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김광섭 시인이 에서 말하고자 하는 평화와 희망의 염원을…
수 많은 비둘기 무리들이 무리를 지어 비둘기 쉼터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의 비둘기들은 자신의 터전을 빼앗겨 마음 아픈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치유하고자 영원히 날 수 있는 비둘기 떼를 비둘기 쉼터에서만이라도 남겨 놓은 것이다.
비둘기 쉼터에서 수 많은 성북동 비둘기들의 환대를 받은 뒤에 마지막에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모두 꽃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비둘기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만 같다. 북정마을에서의 비둘기, 그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북정마을에서 본 성북동의 전경이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북정마을, 하지만 이전에는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보존해가는 모습 또한 중요한것 같다.
북정마을에서 본 성북동의 전경이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북정마을, 하지만 이전에는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에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보존해가는 모습 또한 중요한것 같다.
김광섭 집터로 향하는 길의 모습이다. 오르막이 상당하지만, 김광섭 시인 본인은 항상 이길을 올라가고 내려왔을 것이다.
김광섭 시인의 일제강점기 떄의 모습을 잘 알려주는 사진이다.
그는 1933년 일제강점기 당시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지만, 1941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이내 모진 고문을 받고 2년동안 징역을…
김광섭 시인의 일제강점기 떄의 모습을 잘 알려주는 카드이다.
그는 1933년 일제강점기 당시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지만, 1941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이내 모진 고문을 받고 2년동안 징역을…
김광섭 시인의 일제강점기 떄의 모습을 잘 알려주는 카드이다.
그는 1933년 일제강점기 당시 중동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지만, 1941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혀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이내 모진 고문을 받고 2년동안 징역을…
에 나온 '산 1번지 채석장' 위치를 알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에 보이는 성북동 사진 중에 우측에 보이는 돈암동 아파트단지가 옛 산 1번지 채석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채석장의 흔적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한편, 해당 사진은 한성대학교…
에 나온 산 1번지 채석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위치, 바로 송산 아파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현재는 아파트 주춧돌로 사용되고 있는 바위가 바로 과거 채석장의 흔적인 것이다. 에서 언급되는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이란 채석장에서 폭약을 사용하는 소리였다. 김광섭…
는 김광섭의 시집으로 1969년 11월 15일 발행되었다. 이 사진은 범우사(汎友社)에서 출판한 초판본이다.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에서 살던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성북동 개발 양상을 통해 자연파괴와 인간애 상실을 성북동 비둘기에 투영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가…
현재 공사중인 삼선 5구역 재개발 단지를 한성대학교 진리관 4층에서 바라 본 사진이다.
성북구 삼선동 2가에 위치한 삼선 5구역은 지난 2020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2024년에 아파트 단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한편, 삼선 5구역은 한성대 구성원들과 주민들이…
현재 공사중인 삼선 5구역 재개발 단지를 기록한 사진이다.
성북구 삼선동 2가에 위치한 삼선 5구역은 지난 2020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2024년에 아파트 단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한편, 삼선 5구역은 한성대 구성원들과 주민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현재 공사중인 삼선 5구역 재개발 단지를 기록한 사진이다.
성북구 삼선동 2가에 위치한 삼선 5구역은 지난 2020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2024년에 아파트 단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한편, 삼선 5구역은 한성대 구성원들과 주민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식당가이자,…